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아 칼라스 (문단 편집) == 기타 == * 칼라스는 지독한 근시였지만, 평소에 집에서 생활할 때를 빼고는 절대 안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성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을 고수했던 그녀로서는 안경 쓴 여자는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오페라 무대에서는 사실상 장님과 다를바 없었고 지휘자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매니저를 비롯한 공연 관계자들은 그녀가 행여 무대 밑의 오케스트라 피트[* 객석과 무대 사이에 관현악단이 들어가는 자리. 오케스트라 박스라고도 한다.]에 빠질까 노심초사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었고, 박자를 놓치는 경우도 없었다. * 타고난 음악성과 엄청난 훈련량을 증명하듯이 음악 습득력이 남달랐다. 케루비니의 메데아나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 같은 작품은 일주일 만에 배워 무대에 올랐다. 가장 재밌는 일화로는 이탈리아 데뷔 공연 후 툴리오 세라핀의 초대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오디션을 보게 되었을 때. 학창시절 바그너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오디션 기회를 놓칠 수 없던 칼라스는 그 자리에서 악보를 보며 1막 전체를 노래했다고. 세라핀이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인 뒤에야 바그너는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다는 걸 고백했고, 깊은 인상을 받은 세라핀은 그녀를 기용했다. 후에 그가 벨리니 청교도의 주역을 칼라스에게 선뜻 맡긴 것도 다 이런 경험 끝에 얻은 신뢰 덕이다. * 레나타 테발디와의 경쟁이 워낙 유명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소프라노들은 칼라스의 위대함을 인정했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증언에 따르면 53년 스칼라좌에서 공연한 일트로바토레를 관람 중에, 같은 박스석에 있던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가 눈물을 흘리며 '저 여자는 기적이에요'라고 말했다고.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유명한 브리지트 닐슨은 칼라스에 대한 비평을 이끌어 내려는 기자에게 '컨디션 좋은 날의 칼라스는 우리를 다 모아도 당해낼 수 없는 경지다'라고 말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7/80년대 프리마돈나로 활약한 카티아 리가렐리는 '어느 소프라노가 자기는 칼라스에 신경 안쓴다고 한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 모두 아침에 일어나 오렌지주스 한 잔을 따른 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칼라스 음반을 걸어놓고 '대체 어떡해야 저렇게 부를 수 있나' 궁리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 칼라스가 케루비니의 메데아 역을 처음 불렀을 때 지휘자로 등장한 인물은 [[미국]]의 기대주였지만 오페라 지휘 경력이 일천했던 [[레너드 번스타인]]이었다. 칼라스는 번스타인의 양성애 성향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꽤 까탈스럽게 대했다고 하는데, 자신이 내심 마음에 들어한 연출가인 [[루키노 비스콘티]]와 무대 뒤에서 썸씽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둘 다 남성이고, 둘 다 양성애자이며 사생활도 나름 화려한 편들이다.] 하지만 공연 뒤 번스타인은 '오페라의 성서'라고 칼라스를 추켜세웠고, 이후에도 그 때의 공연이 자신의 오페라 지휘 경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회고했다. * 생전에 이미 전설급 스타가 되어 거대한 팬덤 만큼이나 안티도 많았고, 덕분에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도 많다. 그 중 유명한 몇 가지만 소개하면... * 55년 스칼라에서 대성공을 거둔 라 트라비아타의 커튼 콜 중 팬들이 칼라스에게 던진 꽃 사이에는 안티 팬들이 조롱의 뜻으로 던진 채소들도 섞여 있었다. 칼라스는 꽃 대신 채소를 집어들고 보란듯이 관객에게 인사를 해 멋지게 맞받아 쳤다. * 58년 로마에서의 노르마 공연 중단 스캔들 후 바로 다음 공연은 스칼라에서의 안나 볼레나 재공연이었다. 여론이 엄청나게 안 좋은 상태에서 관중석은 언제든 야유를 퍼부을 준비가 된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안나 볼레나#s-4|1막의 마지막 씬]]에서 칼라스는 안나를 체포하는 병사들을 뿌리치고 무대 앞으로 달려나가 관객들에게 직접 대사를 외친다. "안나를 체포하라! 심판하라, 당신들의 여왕을!"사람들은 칼라스의 극적 표현력에 열광했고, 극장을 떠나는 칼라스의 차를 둘러싸고 진짜 여왕처럼 환대를 했다고 한ㄷ. * 61년 스칼라에서의 메데아 공연 중 컨디션 난조로 제 기량을 못 보이는 칼라스에게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1막의 마지막에 자신을 배신한 이아손을 비난하는 장면에 이르러 관객을 향해 육성으로 대사를 외쳤다. "Crudel! Ho dato tutto a te! 잔인한 사람, 난 당신께 모든 걸 바쳤는데!" 관중들은 공연에 감동하여 기립박수로 답했다. * 6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으로 컴백하여 마지막으로 공연했던 토스카는 시작부터 몇년간 그녀를 오매불망한 팬들의 열기로 팽팽했다. 좌석은 오래 전에 매진이었고 입석표를 구하느라 사람들은 이틀 밤낮을 노숙까지 했다. 공연 날 무대 뒤에서 '마리오!'를 외치는 칼라스의 목소리가 들리고 드디어 그녀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무려 5분여 간 지속되는 사람들의 박수와 '브라바', '비바 디비나'를 외치는 함성 소리로 공연은 잠시 중지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중심에 선 칼라스는 내내 토스카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미동도 없이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 74년 뉴욕,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의 듀오 리사이틀 직전 50년대부터 칼라스의 미국 공연을 매니징하던 솔 후록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렇잖아도 컴백 리사이틀 투어에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과 언론의 악평, 무책임한 디 스테파노와의 다난한 관계 등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던 칼라스에겐 마지막 쥐약 같은 소식이었다. 처참한 상태로 겨우 공연을 마치고 극장을 나서는 그녀의 앞에는 언제나처럼 수많은 팬과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솔 후록이 보낸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흘리던 칼라스는 화환의 꽃을 하나 하나 사람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곧 칼라스의 꽃을 차지하려 흐트러진 무리의 가운데에 길이 났고, 칼라스는 그 틈에 대기하던 차에 올라타 사라져 버렸다. * 어느 이탈리아 [[파스타]] 제조업체가 '칼라스는 우리 회사의 파스타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라고 이빨을 깠는데, 칼라스의 다이어트 식단에 파스타 따위는 없었고 소스 치지 않은 샐러드와 퍽퍽한 [[닭가슴살]]이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소송드립으로 버로우. * [[모리 카오루]]의 [[엠마(만화)|엠마]]에 나오는 묄더스가의 안주인 도로테아 묄더스의 모델도 마리아 칼라스다(이미지만). 작가 자신이 후기에서 공언. * 칼라스가 1971~72년에 뉴욕의 줄리어드 음대에서 성악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했을 때 한국의 소프라노 이규도, 박정하, 테너 박인수와 바리톤 김성길이 그녀의 수업을 들었다. 특히 김성길에게 리골레토의 아리아를 가르치는 세션은 마스터클라스 중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손끕힌다. 다소 밋밋하게 곡을 부르는 김성길에게 칼라스는 절규하는 짐승과 같은 리골레토의 심정을 직접 표현해 보이는데, 그걸 직접 지켜본 이들은 '역사상 최고의 리골레토는 여자였다'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파일:c710e9b9-73ab-411e-a977-98568af9725e.png]] * 그녀가 [[한복]]을 한벌 가지고 있었던게 최근에야 알려졌고 의외의 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의 산탄젤로성에서 열리던 불가리 해리티지 전시회에 칼라스가 소유했던 이 한복이 전시되었는데 우연히 여름휴가차 로마로 갔던 SBS 스포츠의 정우영 아나운서가 이 전시회를 갔다가 이 칼라스의 한복이 [[기모노]]로 설명이 적힌걸 보고 현장에서 관계자에게 수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정우영 아나운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일을 올려서 화제가 되고 기사화가 되면서 불가리 코리아측이 재빨리 본사에 연락해 기모노라 적힌 설명을 한복으로 수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81&aid=0003018024|#]] 그녀가 언제 한복을 갖게 된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녀가 1974년에 내한해서 공연을 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때 내한 당시에 특별히 주문했거나 선물받은 게 아닌가 추정된다. * 2017년에 그녀의 편지 내용, 인터뷰 장면, 공연 장면 등을 통해 그녀의 불운했던 결혼생활과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의 애정 등 이탈리아 생활 이후의 일생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가 프랑스에서 제작되었다. [[분류:그리스의 여가수]][[분류:미국 여가수]][[분류:미국의 성악가]][[분류:그리스계 미국인]][[분류:미국계 그리스인]][[분류:그리스로 귀화한 인물]][[분류:그리스의 정교회 신자]][[분류:미국의 정교회 신자]][[분류:1923년 출생]][[분류:1977년 사망]][[분류:심근경색으로 죽은 인물]][[분류:뉴욕 시 출신 인물]][[분류: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분류:페르 라셰즈 묘지 안장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